최근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쌀 수입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농촌 사회는 물론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조치는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압박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한국의 쌀 산업 보호정책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논의 중인 사안은 특정 품목에 국한된 것이 아닌 농축산물 전반에 걸친 비관세 장벽 해소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측은 쌀과 함께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일부 과일류에 대한 규제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국민 반발이 적을 것으로 판단되는 쌀 수입 확대를 협상 카드로 고려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내 쌀 시장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로, 정부가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초과 생산된 쌀을 시장에서 격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산 저가 쌀이 추가로 유입될 경우, 국산 쌀 가격이 더 하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현재도 연간 약 40만 톤 이상의 쌀이 TRQ(저율관세할당물량)를 통해 수입되고 있으며, 이 중 약 13만 톤이 미국산 쌀입니다.
만약 이 물량이 더 늘어난다면 국내산 쌀 소비는 더욱 위축될 것입니다. 농민단체들은 "쌀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데, 정부가 이를 또다시 외국에 열어주는 것은 농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또한,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주식이자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자원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후 위기와 전쟁,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 등의 요소가 커지는 시점에서, 자국의 식량 자급 능력을 스스로 낮추는 결정은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쌀 수입 완화가 확정된 것이 아니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농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 대책도 함께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양곡관리법 개정 등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쌀 가격이 하락할 경우 자동으로 정부가 수매에 나서도록 하는 등의 장치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부 설명이 국민과 농민을 안심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미 과거 한미 FTA 협상 당시에도 농업 분야는 보호받지 못한 채 개방이 이루어졌고, 이후 농촌 공동체는 심각한 고령화와 소득 저하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쌀 수입 규제 완화 논의는 단순한 경제적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을 지키기 위해 농업을 협상 카드로 쓰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그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부는 앞으로의 협상 과정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민 공감대 형성, 그리고 실질적인 농민 보호 대책 마련에 최우선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쌀은 단순히 밥상이 아닌, 우리의 뿌리이자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